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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게 어떻게 고려대를 왔을까?(2021.05.12)

아침에 간만에 쫌 늦게 일어나서 부모님과 한참동안 초중고 때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나누면서 느꼈지만 초중고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즉흥적으로 계속해서 도전하는 기묘한 인생을 산거 같다.
난 뭔가에 꽂히면 반드시 목표하는 바를 쟁취해내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반대로 딱히 목표하는 바가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먼저 초중학교 땐 확실히 꽂힌게 있었는데, 우습게도 게임이었다. 초등학교 땐 스타크래프트에 꽂혀 아침 일찍 컴퓨터실에 가서 정말 열심히 게임을 했고, 내심 프로게이머를 꿈꿀 정도로 실력도 꽤 좋았었다(물론 얼마 안가 스타판이 망해버렸지만...) 마찬가지로 중학교 땐 리그오브레전드란 게임에 꽂혀 학교가 끝나면 매일 피시방으로 달려갔고, 내 가방엔 교과서보다 기계식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는 경우가 더 많아 선생님께 자주 혼났다. 또, 셧다운제를 피하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게임을 하고 학교에 등교하기도 했다. 덕분에(?) 게임은 매우 잘하는 편이었고 반의 대표로 다른 반과 대결하는 반 대항전에 매번 출전했다.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보니 학원과 과외 숙제는 거의 답지를 베껴갔고, 선생님께서 답지를 가져가시는 경우엔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베껴갔다.
이 와중에 공부는 싫어해도 학교 활동을 하는 것은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사회동아리나 진로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하고, 자치법정 변호사로 꾸준히 활동하기도 했으며 3년 동안 학생회를 하면서 교장실 교감실을 정말 밥 먹듯이 들어가기도 했다. 누군 물을 것이다. 국제고 가려고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난 국제고의 존재를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담임선생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영어 성적만큼은 좋았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국제고 설명회를 가보라고 하셨고, 가보니깐 학교가 너무 예뻐서 반하게 돼 그때 국제고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이때 갔을 땐 분명 학교에서 분수도 틀어주고 그랬는데, 이후에 3년 다니면서 분수 틀어준걸 본적이 없다...) 아까 말했듯이 난 꽂힌 것에 대해선 반드시 쟁취하고자 한다. 국제고에 꽂힌 시점에서 국제고는 내가 반드시 쟁취해야할 대상이 됐고, 자소서, 면접 등을 정말 빈틈없이 열심히 준비했다. 또, 이전까지 열심히 했던 학교 활동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운이 좋게 합격하게 됐고, 국제고라는 목표를 쟁취해냈다.
국제고에 입학하게 된 1학년, 난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험 전날까지 교과서 한번 펴보지 않고 시험을 본 과목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던중 무작정 활동 하나에 꽂혀 참여하게 되는데, 바로 ‘서울대 GLISMUN 모의유엔’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꽂혔는지 잘 모르겠다. 비용도 30만원 상당으로 꽤 비쌌고, 당시 외국인과 영어로 말 한마디 안해본 내가 영어 토론을 하겠다고 했다니... 지금은 설명할 수 없지만 당시에 꽂혔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부탁을 드리고 가게 됐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부모님께선 항상 내 결정을 믿고 지지해주셨다. 30만원이라는 비용이 사실 선뜻 투자하긴 쉽지 않은 금액인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항상 믿고 밀어주셨던 것 같다. 뒤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부모님의 그런 점이 내가 고려대에 가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아무튼 서울대 GLISMUN에 같이 갔던 친구들은 나를 제외하고 참 대단한 친구들인데, 한 명은 국제고에서 전교 1등에 3학년 때 갑자기 의대를 가겠다고 준비를 시작해 수능 2개 틀리고 의대를 간 친구이며 다른 한 명은 정말 수십개 언어를 다룰줄 아는 언어 천재에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간 친구이다. 어쩌다 이런 조합에 나 따위가 끼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ㅎ 모의유엔에 가서 말한 영어 단어 숫자보다 내가 친 박수의 숫자가 더 많았지만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이후에 고려대 통계학과 특기자전형을 쓰는데 서류 중 하나로 이 GLISMUN 수료증을 내기도 했다. 정말 근거 없이 도전했던 활동이지만 결국에 내가 대학을 가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고 2학년이 되면서 제대로 꽂힌 것이 생긴다. 바로 고려대학교 통계학과였다. 고려대학교 민족의 아리아, 축제 영상을 유트브로 보다가 고려대학교에 정말 푹 빠졌다. 아침 알람을 고려대학교의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로 해놓을 정도였다. 또, 한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딥러닝 분야에 관심이 생겼고 그 기반인 통계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1학년 때 내 내신 성적은 고려대는 무슨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를 준비해야될 정도의 처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목표로 한 이상, 반드시 쟁취하고 싶었기에 2학년 때부터 죽어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뵙게 돼 옆에서 열심히 서포트 해주신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때 정말 말도 안될만큼 성적을 많이 올렸고,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그리고 3학년 부장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는데, 요즘엔 통계학과가 너무 잘나가기 때문에 내 성적으론 통계학과가 힘들거라고 말씀하셨다. 차라리 고려대 경제학과를 쓰라고 나를 계속해서 설득하셨다. 하지만 나는 2년이 넘게 목표로 했던 고려대학교 통계학과를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의견에 반항하고(?)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특기자 전형’이었다. 당시 아무도 나에게 특기자 전형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다. 고려대 통계학과를 너무 가고싶은 마음에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면서 입학 전형들을 마구잡이로 알아봤고, 특기자전형에 대해 알게 됐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해당 분야에 능력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뽑겠다는 취지의 전형이다. 당시에 모두가 이 전형으론 힘들거라했지만 난 이미 이 전형에 꽂혔고 도전 의지가 불탔기에 고등학교 3학년 8월, 수능 공부하기도 바쁜 시기에 수능 공부를 버리고 몇날 며칠을 투자해 통계 자격증을 공부하는 미친짓을 시작한다. 다행히 며칠 밤을 새가며 성공적으로 통계 관련 자격증을 따낸다. 이때 자격증 비용만 30만원 쯤이었고 말도 안되는 도전이었는데 이때도 부모님께선 묵묵히 서포트 해주셨다. 부모님께선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건 다 해보라고 하셨고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건 다 해보고자 수능 3주 전에 학교를 일주일 빠지고 수능 공부를 버린채 특기자 전형 면접 준비를 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한번 더 하게 된다(난 특기자전형보다 수능 성적이 들어가는 일반 전형이 훨씬 가능성 있었다). 말도 안됐던 도전의 결과는 성공.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부모님의 믿음과 지지에 힘입어 결국 고려대 통계학과 예비 1번을 받아 합격하게 됐다.
정리하자면, 내 인생은 뭔가에 꽂혀 막무가내로 도전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게 게임일때도 있었고, 국제고일때도, 고대 통계일때도 있었다. 여기에 적진 않았지만 '너가 이걸 왜 해?' 싶을 정도로 이상한 도전을 한적도 많다. 하지만 그 도전은 결과가 어떻든 항상 의미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도전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난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도전 그 자체로 의미가 넘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국제고와 고려대 특기자 전형에 떨어졌더라도 난 전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올해 코딩에 처음 입문해 IT 산업기능요원으로 입사하려는 또 하나의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설령 정말 IT 산업기능요원에 가는 것을 실패한다할지라도 나는 도전 과정에서 개발이라는 적성에 너무나 잘 맞는 분야를 찾았다. 그렇기에 몇 번 더 넘어지더라도 결국 키를 바로잡고 다시 국내 최고의 개발자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최고의 창업가로 나아갈 것이다. 아직 어리기에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앞으로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할 것이다. 난 그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